향수 소개를 처음 봤을 때부터 눈을 사로잡은 건 체리와 막걸리라는 조합이었습니다. 평소 달콤한 구어망드 계열, 그중에서도 체리향수를 워낙 좋아하는 편이라 기대가 컸는데요. 체리와 막걸리가 함께 들어간 노트는 처음이라 어떤 향으로 완성됐을지 궁금증이 더 컸습니다. 72솝의 니치 향수 취화몽, 직접 시향한 경험을 노트별로 정리해보겠습니다.
패키지와 콘셉트 — 체온에 따라 완성되는 향
패키지부터 체리와 막걸리라는 콘셉트가 잘 드러났습니다. 짙은 적갈색에서 흰색으로 이어지는 그라데이션 디자인의 원통형 보틀에 흰색 뚜껑이 올라간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특히 눈길이 갔던 건 "36.5도에서 완성되는 중독"이라는 문구였습니다. 뿌린 사람의 체온과 체취에 따라 향의 시작과 깊이, 느껴지는 노트가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였는데요. 향수라는 게 결국 내 피부 위에서 완성되는 거라는 걸 새삼 실감하게 해주는 콘셉트였습니다.
엑스트레 드 퍼퓸(Extrait de Parfum, 향료 농도가 가장 높은 향수 타입으로 부향률이 20~30% 이상에 달해 지속력이 매우 긴 것이 특징)이라는 점도 시향 전부터 기대를 키운 요소였습니다.
탑노트 — 두 얼굴의 체리, 그리고 깔끔한 시작
노트 구성부터 살펴보면, 탑노트(Top Note, 뿌린 직후 첫 몇 분간 나타나는 향의 첫인상)는 레몬, 스윗 체리, 사프란, 주니퍼로 구성돼 있습니다.
뿌리자마자 달콤한 체리향이 먼저 올라왔는데, 흔히 생각하는 과즙 팡 터지는 생체리 느낌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체리 리큐르(Liqueur, 과일이나 허브 등을 증류주에 우려 단맛을 더한 술)나 칵테일에 들어간 체리처럼, 살짝 절여진 듯한 녹진한 느낌이 먼저 느껴졌어요. 비유하자면, 마치 칵테일 잔 속에 떠 있는 체리 한 알을 코앞에 가져간 듯한 무드였습니다.
이 향수에는 체리가 두 번 등장하는데, 탑노트의 스윗 체리(Sweet Cherry)와 미들노트의 사워 체리(Sour Cherry)가 서로 다른 얼굴을 보여줍니다. 스윗 체리는 방금 딴 체리를 입에 넣었을 때처럼 무방비하게 달콤한 느낌이라면, 사워 체리는 훨씬 성숙하고 짙은 인상이었어요. 다행히 레몬 노트 덕분에 첫 향은 답답하지 않고 의외로 깔끔하게 열렸습니다.
미들노트 — 상상과 달랐던 막걸리 노트
미들노트(Middle Note, 탑노트가 사라진 뒤 나타나는 향수의 중심 향)는 막걸리, 코냑, 사워 체리, 불가리안 로즈, 재스민 삼박, 미모사로 구성돼 있습니다.
막걸리 노트라고 하면 구수하거나 발효된 향을 예상했는데, 실제로는 전혀 다른 방향이었습니다. 전통주 특유의 묵직함이나 곡물 발효취보다는, 은은한 산미와 부드러운 곡물의 질감 정도만 살짝 느껴지는 수준이었어요. 쉽게 말하면, 체리를 동동 띄운 막걸리 한 잔을 마시기 직전에 코끝으로 스치는 향과 비슷한 느낌이었습니다. 완전히 하나로 섞이기보다는 체리와 막걸리가 각자의 영역을 지키면서 함께 존재하는 인상이었어요.
불가리안 로즈나 재스민 삼박 같은 플로럴 노트(Floral Note, 꽃에서 추출한 향료가 중심이 되는 향 계열)도 느껴졌지만, 장미나 재스민이 따로 튀어 오르는 느낌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체리와 막걸리 사이를 부드럽게 이어주는 연결고리 역할에 가까웠고, 덕분에 향 전체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면서 달콤한 체리향 특유의 부담스러움도 한결 덜어졌습니다.
베이스노트와 지속력 — 패츌리가 만드는 성숙한 잔향
베이스노트(Base Note, 향수의 마지막 단계에서 가장 오래 남는 향)는 쌀, 달고나, 바닐라, 앰버, 벤조인, 발삼, 머스크, 패츌리로 구성돼 있습니다.
브랜드 소개에서는 쌀과 달고나, 바닐라를 강조하고 있었지만, 실제로 시간이 지날수록 가장 강하게 느껴진 건 패츌리(Patchouli, 흙내음이 나는 드라이하고 묵직한 우디 계열 향료)였습니다. 패츌리 특유의 드라이하고 묵직한 잔향이 체리의 달콤함을 눌러주면서, 향 전체를 한층 성숙한 분위기로 이끌어줬어요. 단순히 달콤한 체리 구어망드에서 그치지 않고 관능적이고 몽환적인 무드까지 더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지속력은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손을 씻고 나온 뒤에도 손등에서 은은하게 향이 올라올 정도였고, 옷에 스친 부분은 다음 날까지도 향이 남아있었어요. 엑스트레 드 퍼퓸답게 향의 밀도 자체가 진하게 느껴졌고, 가볍게 흩어지기보다는 피부 위에 오래 머무르는 타입이었습니다. 처음엔 달콤한 체리, 그 다음엔 막걸리와 코냑의 은은한 질감, 마지막엔 패츌리와 머스크가 피부에 각인되듯 남는 흐름이었어요.
자주 묻는 질문
Q. 체리향수인데 너무 어리거나 캔디 같은 느낌인가요?
A. 그렇지 않습니다. 체리 향수임에도 귀엽거나 발랄한 이미지보다는 세련되고 어른스러운 분위기에 가까웠습니다. 막걸리와 패츌리 노트가 더해지면서 성숙한 무드로 완성됩니다.
Q. 막걸리 냄새가 강하게 나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A. 저도 그 부분이 가장 궁금했는데, 실제로는 발효취나 곡물 냄새가 진하게 나지 않았습니다. 은은한 산미와 가벼운 곡물감 정도로만 표현되어 있어 부담이 적었습니다.
Q. 어떤 계절이나 상황에 어울릴까요?
A. 선선한 계절, 저녁 약속 자리에 가볍게 뿌리면 은근한 존재감을 남기기 좋은 향이라고 느꼈습니다. 다만 향에 대한 취향과 체취 반응은 개인차가 크니 소량으로 먼저 시향해보시길 권장합니다.
마치며
전체적으로 정리하면 생체리보다는 체리 칵테일에 가까운 탑노트, 부드러운 곡물감의 막걸리 미들노트, 쌀과 달고나가 받쳐주는 포근한 베이스, 그리고 패츌리가 남기는 깊은 잔향까지 네 가지가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체리향수를 좋아하지만 너무 캔디 같거나 어린 느낌은 원하지 않는 분들, 그리고 조금 색다른 무드의 향수를 찾는 분들에게 한 번쯤 시향해보시길 권하고 싶은 향이었습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시향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한 정보 제공 목적의 글이며, 향에 대한 느낌은 체온과 체취에 따라 다르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